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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동료와 함께 술자리에서 이번 작업에 대해 나눈 이야기 중 그 동료의 말을 복기하며 정리한 글이다. 




1. 영상 작업에 관하여 
 난 그 두 동영상이 일종의 동전의 앞, 뒤. 또는 거울상이라고 생각했어. 그러니까 '헛된 비극의 제스처'와 '헛된 희극의 제스처'로. 그런데 이 제스처가 드러내는 것은 이 '세계의 비참'을 비참으로 증언할 수 없기 때문에 나오는 그런 제스처에 대한 '엉성한 흉내'거든. 여기서 방점을 '엉성한'에 찍으면 두 동영상은 어떤 '미달'이 되겠지만, 방점을 흉내-제스처의 제스처로 읽는다면 사실의, 혹은 인물의 커리커춰가 아니라 커리커춰의 사실화가 될 수도 있다고 봐. 덧붙여 욕조에 들어갔다 나오는 얼굴, 발의 클로즈업은 이 세계에 개입하는 존재로서의 인물. 이 세계에 개입 당하는 인물의 초상이 되겠지. 그런데 이 장면은 전 전시에서 보여준 '우는 얼굴'의 클로즈업과 연결 되는 면이 있어. 한 단독자로서 이 세계에서 '예술가-되기, 그리고 예술가로 살기'라는 자의식과 나르시즘의 어떤 말 못할 덩어리. '나-작가'라는 테두리를 벗어나고 싶지만, 사실은 그 테두리에 도달할 수도 없다는 절망감을 연기하기, 그리고 절망하기, 또 다시 그걸 희화화하고 희화화된 자신-김빠진 자신을 혐오하고, 사랑하기. _ 화가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