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프로젝트





요가프로젝트 2011~2013

거룩한 풍경의 이면 / 강홍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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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정호는 최근 갯벌에서 놀았다. 강화도 갯벌에서 요가를 하고 그것을 사진으로 찍었다. 
옥정호가 뻘밭에서 한 요가는 놀이다. 그 놀이에는 의미가 없다. 풍자여도 좋고 아니어도 좋으며, 은유나 상징이어도 아니어도 그만이다.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만 가장 그럴듯한 것은 문자 그대로 뻘밭, 그의 표현을 빌지만 진흙탕에서 노는 일이다. 그는 뻘밭에서 요가를 한 것도 어느 날 친구와 낮술을 먹다 갑자기 난 생각이었다고 말한다. 
뻘밭은 단순한 진흙탕이 아니다. 느리게 빠져 들어가는 수렁과 같다. 뻘밭은 처음에는 단단한 듯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점 깊이 빠져들어간다. 나중에는 한 발을 빼내기 조차 힘들어진다. 물론 그것은 뻘과 물과 모래가 섞인 비율과 점도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그래서 아무도 뻘밭에서 요가를 하지 않는다. 체조도 하지 않는다. 그에 적합한 장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해병대와 같은 군인들이나, 연예 오락 프로그램, 병영체험을 제외하고서 말이다. 뻘밭은 놀이와 생산의 장소이다. 갯지렁이부터 꼬막에 이르는 수많은 해산물의 서식지이고, 칠면초와 퉁퉁마디가 사는 장소이며, 나처럼 서해 섬에서 태어난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놀이터이다. 바닷물에서 헤엄을 치고, 뻘에서 뒹굴고, 미끄럼타고, 성을 쌓고, 둑을 막고, 숭어새끼와 모시조개를 잡는 놀이 까지 할 수 있다.
옥정호의 요가는 <안양 무지개> 연작에서도 등장했었다. 그것은 일종의 언어, 상징적 기호였다. 그가 몸으로 쓴 그 기호들은 주위의 여러 가지 상황들을 비웃고, 냉소를 보내는 장치였다. 광화문이나, 안양천, 천안문 등의 장소에서 중국과 한국의 엄숙한 권력과 자본의 기호들 사이에 끼어 도드라지게 튀면서 그것들을 다시 보게 하는 역할을 했다. 옥정호의 이런 작업 스타일은 요가 이전에도 영어마을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욕망이 예민하게 드러나는 곳에서 설치와 퍼포먼스, 사진 찍기 등을 통해 지속 되었다. 그가 뻘밭에서 한 요가는 이러한 퍼포먼스의 연장선에 있다. 그러면서도 다르다. 그 다름은 장소와 퍼포먼스의 성격에 있다.

2
뻘밭이라는 장소는 이전까지 옥정호가 사진을 찍던 곳과는 성격이 아주 다르다. 뻘밭은 인간의 손이 가지 않는 천연의 장소, 권력과 자본의 기호에서 일단 벗어난 곳이다. 그곳은 자연이 그 원시적인 생산성과 힘을 동시에 보여주는 곳이다. 때문에 뻘밭은 인위적 기호로서의 역할보다는 그 원초성으로 인해 의미를 갖는다. 자연이 인간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한가, 즉 인간을 지배하려 하지도 않고 동시에 인간으로부터 침해받고 싶어 하지도 않는 자연의 본성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인간의 육체는 그곳에서 순수하게 무게와 부피를 가진 생물의 그것이 된다. 인간이라기보다는 한 마리의 생물처럼 옥정호는 뻘밭에서 요가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옥정호의 요가나 뻘빹이라는 장소가 즉자적 순수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뻘밭이 지금은 보호받아야 하는 지역으로 여겨진다는 것, 자연 그대로라고 인식 된다는 것 자체가 벌써 상징과 기호 안에 포함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옥정호 역시 이를 눈치 채고 사진 속에 익숙한 기호를 배치한다. 사진 배경에 버려진 듯이 세워진 수퍼마켓에서 쓰는 바퀴 달린 커다란 카트가 그것이다. 그 카트는 당연히 수퍼마켓, 소비, 자본, 신자유주의 등등의 일련의 의미 사이클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그 카트는 비어있고 뻘밭에서는 무용지물이기 때문에 코믹해진다. 단단한 땅에, 평평한 포장 도로위에서 잘 굴러가는 바퀴 달린 금속제 카트란 뻘밭에서는 짐일 뿐이다. 수사학적으로 보면 일종의 수미쌍관 법이다. 옥정호의 요가 또한 뻘밭에서는 무용지물, 인간의 육체는 그 곳에서 짐일 뿐이기 때문이다.
옥정호는 그의 이번 작업에서 최대한 의미를 털어내고 사진이 가진 재현성과 현장성에 집중하려 했다고 말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그는 아무 것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없었다고 한다. 기호적 상징성이 아닌 육체와 뻘밭이 가진, 혹은 뻘밭에서 자신의 몸이 남긴 흔적과 자세에 초점을 맞췄다는 말이다. 때문에 그의 요가는 언어적 기호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육체가 가지는 가장 순수한 형태 그 자체이기도 하다. 이 이율배반이 가능한 것은 요가라는 것 자체가 문화적 코드이자, 인간의 육체를 행위 자체에 집중하게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짐작이긴 하지만 인도에서 요가가 발명된 까닭은 아마도 비일상적인 육체적 수련과 명상을 통해 인간 스스로 자신의 육체와 삶과 세계를 되돌아보게 하는데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장소로서 뻘밭은 사실 요가와 무척 잘 어울리는 곳이다. 옥정호가 차려 입은 양복과, 뻘밭이라는 장소와, 요가라는 신체 기호의 만남은 문자 그대로 이전투구 泥田鬪狗이니까.

머리로 서기 자세 – 사람바 시르아사나, Pigment Print, 145*174cm,2011





서서 활 자세 – 단다아마나 다누라사나, Pigment Print,127*152cm,2011





비둘기 자세– 에카 파다 라자카포타사나, Pigment Print ,127*152cm,2011





팔꿈치로 서기 자게– 시르아사나, Pigment Print,127*152cm,2011





서서 상체 숙이기 자게– 웃타나사나, Pigment Print,127*152cm,2011





쟁기 자게 변형– 할라사나, Pigment Print,127*152cm,2011





삼각 자게- 웃티나 트리코나사나, Pigment Print,127*152cm,2011





쉬는 자세, Pigment Print,127*152cm,2011







태양예배자세_수르야 나마스카 / 2012

태양예배자세 – 수르야 나마스카, 4채널 비디오, 5`30``, 2012

 설치전경 





메뚜기자세- 살랍하사나

 메뚜기자세- 살랍하사나  / single channel video / 4`34``, 2012





나무자세- Vrksasana  

 나무자세- Vrksasana  / single channel video / 4`00``, 2013